[마이더스] 오징어게임×군중심리
한국이 만들고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된 히트작 '오징어게임'은 생존경쟁이라는 표면적 주제를 넘어, 인간의 본성과 인간관계의 심리적 이면까지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극한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며 그 행동이 개인과 집단에 무슨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데, 단순히 흥미로운 줄거리 전개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심리적 딜레마와 집단행동의 작동원리를 해석해준다. ◇ 숨겨진 심리학: 왜 우리는 다수를 따를까? 이 드라마의 중심에는 '선택의 딜레마'가 자리 잡고 있다. 게임을 멈추려는 자와 게임을 계속하려는 자, 협력을 추구하는 자와 경쟁을 부추기는 자의 대립이 서사의 큰 줄기를 형성한다. 참가자들은 사망자가 속출하는 잔혹한 게임을 지속할지 말지 스스로 결정한다. 가장 민주적인 방법인 투표를 통해서. 하지만 그 선택이 반드시 옳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때로는 개인의 판단력과 도덕적 결정을 희생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참가자들은 휩쓸리듯 다수의견에 따라간다. 왜 비합리적 결정을 하고, 다수의 선택에 쉽게 동조하는 걸까? 고립되지 않기 위해 다수를 따르는 군중심리는 인간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군중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 '개인의 선택'을 지키는 데 중요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프랑스의 심리학자 구스타브 르봉(Gustave Le Bon)은 군중심리는 단순히 다수를 따르는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깊은 본능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했다. 다수의 결정에 따르는 게 본능적으로 안전한 선택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규칙과 선택: 멈추려는 자 vs 계속하려는 자 오징어게임은 규칙으로 진행된다. 게임을 멈출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참가자들은 게임을 지속하기로 선택한다. 단순한 드라마 설정이 아닌, 인간 심리의 깊은 부분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여겨진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협력하며, 어디까지 협력할 수 있을까? 오징어게임 시즌2에서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은 자신이 게임을 경험한 사실을 얘기하며 협력을 끌어낸다. 솔직함과 신뢰를 기반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트랜스젠더 현주(박성훈 분)는 참가자들을 진정시키고 독려하는 데 앞장선다. 인간의 본성이 자기보호에 국한하지 않고,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딱지치기, 공기놀이, 제기차기, 비석치기 등 옛 놀이를 활용한 게임은 우리 사회의 경쟁과 협력관계를 상징적으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혼자만 잘하는 데 치중하지 않고 같이 잘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협력이 필요함에도 게임을 지속하려는 자와 멈추려는 자의 갈등 구도가 생기면 사람들은 비합리적 결정과 폭력을 자행한다. 그 중심에는 군중심리가 있다. ◇ 군중심리와 비합리적 선택 군중심리는 인간 행동의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 구스타브 르봉은 군중심리에 대해 '다수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이 이성적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군중 심리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개성 상실과 감정 치중으로 이성적 판단이 미약해진다. 둘째, '감정 전염'이 발생해 공포나 불안과 같은 감정이 빠르게 확산한다. 셋째, 책임 분산이 이뤄져 집단 내에서 책임이 개인에게서 멀어지고, 그로 인해 비합리적 행동이 촉진된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공포 속에서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한다. 움직이면 죽는다고 알고 있지만 한 명이 겁에 질려 뛰어가니 덩달아 뛰어가는 식이다. 이러한 심리는 현대 사회의 여러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노엘 노이만은 '침묵의 나선 이론'으로 소외와 비난을 두려워하는 심리를 설명한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소외이고, 그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줄이고 다수 의견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 우리 삶 속에도 있는 군중심리 군중심리는 극단적 상황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 일상에서도 자주 나타나며, 개인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현대사회에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군중심리가 강화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대중적 지지를 받는 의견에 동조하거나, 인기 있는 행동을 따르며 안도감을 느낀다. 군중심리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인지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상황에 맞는 판단인지 자신에게 질문하고, 나아가 마음을 열어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 의식 있는 사람들의 협력이 중요하다. 성기훈처럼 소신껏 의견을 내는 사람들과의 협력도 필요하다. 셋째, 군중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고, 필요하다면 흐름에 반하는 용기를 내야 한다. 군중심리는 사회의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군중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독립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과 인간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 김은성 KBS 아나운서 
ㅡ[연합뉴스]ㅡ202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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