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최종편 '파멸의 날' 시사회에서 본 엘리스(요보비치)는 여느 여전사와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삐딱하고 멋있는' 정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남자들의 관점에서 본 '여성성'을 철저히 배척하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전의를 상실한 적을 확인 사살하는 장면에서 앨리스의 표정이 클로즈업되는데요. 무표정하게 치켜뜬 눈에 살짝 어린 조소는 이 시리즈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지던트 이블:파멸의 날' [UPI코리아 제공]
'툼 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나 '헝거게임' 시리즈의 제니퍼 로렌스처럼 검증된 액션 히로인들에게 '앨리스'는 맞지 않은 옷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레지던트 이블 전 시리즈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폴 앤더슨 감독은 "레지던트 이블의 세계를 관객에게 보여주려면 요보비치가 연기하는 앨리스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는데요. 요보비치였기에 차별화된 여전사 캐릭터가 완성됐다는 설명으로 들립니다.
긴장을 이완해줄 달콤한 장면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로맨스는 약에 쓸래도 없다. 남자들은 다 악당으로 나오는데 어떻게…."라며 볼멘소리를 할 것도 같습니다.
이번 편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바이오 테크 대기업 엄브렐라 코퍼레이션이 개발한 T-바이러스는 영원히 늙지도 병들지도 않게 해주는 축복의 약물로 각광받지만, 머지않아 치명적인 부작용이 드러납니다.
엄브렐라 코퍼레이션의 공동창업자 닥터 아이작스는 T-바이러스의 부작용을 감추기 위해 부하 몇 명을 제외하고 전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하는데요. 전 세계에 퍼진 T-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류는 좀비로 변하고 마지막 인간 생존자들마저 위협받게 됩니다.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 앨리스는 폐허가 된 도시를 떠돌던 중 엄브렐라가 T-바이러스를 해독할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백신을 손에 넣기 위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자 엄브렐라의 심장인 '라쿤 시티'로 잠입하게 되죠.
'레지던트 이블:파멸의 날' [UPI코리아 제공]
스토리 전개에서 모든 공감대와 동료애는 여성 캐릭터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집니다. 출현하는 남성 캐릭터들은 악당, 배신자, 상명하복밖에 모르는 조직원들로 묘사됩니다.
앤더슨 감독이 요보비치의 남편이라서 '특별한 내부 검열'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성들의 전우애'에 매혹된 남성 마니아 관객들이 많다는 것은 흥미로운 발견입니다.
다만, 이러한 젠더의 경계 때문에 한류스타 이준기가 연기한 엄브렐라 그룹의 사령관 '리'의 존재감은 상당히 미약합니다. 특별출연인 만큼 그의 액션 스킬을 보여주는 발판 정도로 생각한다면 만족할 수 있지만, 원래 그의 팬이 아닌 서구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는 배역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준기는 언어 장벽 때문이어서 그런지 액션이 없는 신에서는 거친 숨과 잔뜩 약오른 '표정 연기'로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종류의 연기는 중국과 일본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 초기에 많이 시도했던 방법으로 분명 한계가 있을 듯합니다.
오히려 그의 엣지있는 분위기와 클로즈업된 날카로운 눈매를 살려 과묵한 무표정에 간간이 보이는 비열함을 부각했다면 이준기만의 동양적인 카리스마를 잘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밀라 요보비치, 유쾌한 미소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배우 이준기(왼쪽)와 밀라 요보비치가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영화 '레지던트 이블:파멸의 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1.13 mjkang@yna.co.kr
이준기가 표정 연기에 중점을 뒀다면 요보비치는 온몸으로 연기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대사 없이 몸으로 카리스마를 보여줬는데요. 아마도 그녀의 연기 스타일은 톱 모델 경력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요보비치의 독보적인 캐릭터 구성을 떠나 영화의 전체적인 연출을 놓고 본다면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은 상당히 '숨 가쁜'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는 일부 반응과 같은 맥락인데요.
48시간 안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설정하에 영화의 9할 정도가 빠른 호흡의 액션으로 이루어집니다. 괴물과의 레이싱, 달리는 전차 위에서의 전투장면, 공중에 매달린 채 벌이는 총격전…. 그 주변에는 빠르게 달리는 좀비 부대로 화면이 가득 찹니다.
마치 히트 액션 영화들, '헝거 게임'과 '매드 맥스'에 호러 스릴러 '쏘우'의 하이라이트들을 합친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걸어가는 신, 통로를 모색하는 신에서도 카메라의 후방 샷이나 음산한 음향 효과로 관객들은 잔뜩 움츠러들 수밖에 없습니다. 미장센은 장기밀매를 연상시키는 지하 실험실이나 곰팡이가 시커멓게 피어 안이 보이지 않는 시험관들로 언제 어디서 좀비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니아 관객들은 분명히 색다른 묘미에 빠질 듯합니다. 하지만 대중적인 성향의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상당히 버거울 것도 같습니다. 개봉은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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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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