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신작 제목인 '오버 더 펜스'는 야구장에서는 타구가 외야와 관중석 사이의 울타리를 넘는 홈런을 말합니다. 영화에서 펜스는 일종의 '경계' 또는 '한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오다기리 죠의 30대 마지막 감성 멜로 영화로도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가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드물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평범한 남자'라는 배역에 끌렸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그토록 비범한 용모와 스타일의 오다기리가 '흔남'(흔한 남자)을 연기한다는 것은 일본 영화 팬들에게 상당히 즐거운 이벤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버 더 펜스'는 단순히 평범함의 옷을 입은 선남선녀의 로맨스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의 필수 덕목이 되어버린 '보편성'이라는 보호색이 주는 안도감의 이면에 자리한 관계 실패에 대한 공포와 공격성, 그리고 타인과의 거리감을 일본 멜로 특유의 일상 로맨스로 풀어내 신선함을 안겨줍니다.
'오버 더 펜스' [씨네룩스 제공]
얼버무리는 듯한 미소, 무난하지만 피상적인 대화. 남주인공 '시라이와'는 예의 바르지만 타인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일반적이고 흔한 일본 40대 남성입니다. 한때는 도쿄에서 매일 야근에 시달리던 회사원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아내와 이혼하고 홋카이도의 작은 항구도시 하코다테에서 조용히 홀로 살아갑니다.
휴식기를 겸해 다니게 된 기술전문학교에서는 늦깎이 학생들과 목공 일을 배우고 소프트볼을 하는 소소한 일상이 이어집니다. 학교의 교관은 '성실'과 '태도'를 강조하면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낙오자'로 분류해 동기들 앞에서 모욕을 주지만, 적당히 평범한 '시라이와'는 무탈한 학교생활을 보냅니다.
'오버 더 펜스' [씨네룩스 제공]
그러던 어느 날, 도시락집을 나서던 그는 새 흉내를 내는 기묘한 젊은 여성을 보게 됩니다. 동기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간 호스티스 바에서도, 낮에 찾아간 동물원에서도 그녀와의 만남이 계속됩니다. 남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녀에게 당황하면서도 그녀가 내미는 손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너무나 평범한 남자 '시라이와'와 너무나 특이한 여자 '사토시'. 둘은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리지만, 각각 안고 살아온 상처가 큰 사람들이기에 불안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오버 더 펜스' [씨네룩스 제공]
오다기리와 동갑내기인 마흔 살의 야마시타 감독은 1999년 '지루한 삶'으로 데뷔해 청춘들의 '보통의 일상 이야기'를 다각도로 그려낸 잔잔한 연출법으로 사랑받아왔습니다.
시라이와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인물로, '오버 더 펜스'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 역시 비슷한 상처나 과거를 짊어지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시라이와는 누가 보아도 흠잡을 데 없이 무난한 성격이지만, 그의 개인적 일상은 남들과 다르다 싶을 정도로 부서지고 짓이긴 부분이 혼재합니다. 반면, 겉으로는 특이한 말투나 행태를 보이는 인물들도 개인적으로는 가족들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일구어 갑니다.
'오버 더 펜스' [씨네룩스 제공]
시라이와의 웃으며 얼버무리는 표정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시라이와 일행이 젊은 여성들과 합석한 술자리 장면에서 도드라집니다.
여성 중 한 명이 시라이와를 두고 40대 이혼남, 아저씨라고 놀리자 그는 그 웃으며 얼버무리는 표정으로 "왜 웃는 건데. (어차피 너희 정도의 인생에) 재미있는 일 따윈 조금도 일어나지 않을 텐데"라며 신랄하게 대꾸합니다.
평범함의 가면 너머에 존재하는 모순, 보편성 뒤에 숨어야 하는 부조리한 상황, 시라이와의 자기비판을 통해 억눌린 인간의 '본성'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럼으로써 현대인들에게 보편성에 대한 편집증을 넘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내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오버 더 펜스' [씨네룩스 제공]
"10여 년 전이었다면 시라이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오다기리의 말처럼, 영화도 인간의 삶과 사랑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울림을 내기 위해 여러 가지 설정상의 변경을 거쳤습니다.
남주인공의 나이는 원래 20대였으나 영화화되면서 40대로 수정되었고, 여주인공이 추는 기이하면서 애잔한 '새 춤'은 추가된 설정입니다.
'오버 더 펜스' [씨네룩스 제공]
한편, '오버 더 펜스'는 원작소설인 '황금의 옷'이 일본 유명 소설가 사토 야스시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더합니다.
사토는 열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나오키상과 아쿠타가와상 등에 다수 노미네이트된 성공한 문학가이지만, 그에게도 힘겨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황금의 옷'은 그가 소설가로서의 생활을 포기한 이후 고향 하코다테의 직업훈련학교에서 보낸 일상을 토대로 집필됐습니다.
'오버 더 펜스'는 앞서 사토의 다른 소설들이 영화화된 '카이탄 시의 풍경'과 '그곳에서만 빛난다'와 함께 일명 '하코다테 3부작'의 최종 작품입니다. 그의 소설은 묵직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대부분이지만, '오버 더 펜스'는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활짝 갠 느낌의 마무리를 보여주기에 봄과 상당히 어울리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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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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