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폭력성과 파멸을 그린 연극 '남자충동'이 지난 2004년 재현 이후 13년 만에 무대 위에 올랐다. 1997년 초연된 조광화 연출 작품으로, 그의 데뷔 20주년을 맞아 다시 공연하게 됐다.
이야기의 무대는 전라남도 목포시다. 이죽거리는 표정이 악랄해 보이는 사내가 주인공 '장정'이다. 조직폭력배인 그는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를 존경한다. 장정은 조직의 힘을 기르고 가족을 지키는 게 사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순탄치 않다.
장정에겐 폭력적이고 무능력한 노름꾼 아버지 '이씨'가 있다.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어머니 '박씨'는 그런 남편에 매를 맞기 일쑤다.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여동생 '달래'는 자폐가 있고, 남동생 '유정'은 유약하기 짝이 없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모래성 같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장정이 선택한 것은 '폭력'이다. 장정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주먹을 휘두르며 근심거리를 잠재운다.
작품의 이름만 보면 굵고 거친 남자들의 세계를 담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비루하고 초라한 수컷들뿐이다. 폭력을 맹신하는 주인공 장정의 삶이 그렇고, 노름으로 생계를 이어보겠다는 '이씨'의 어리석음이 그렇다. 강자의 눈치만 보며 살아가는 동생 유정과 그런 남자들의 세계가 싫다며 여장남자가 된 단단의 모습에선 비겁함이 느껴진다.
장정은 폭력 속에서 성장해 왔다. 아버지는 툭하면 어린 그를 때리고 컴컴한 벽장에 가두곤 했다. 그런 장정은 자신이 힘없고 연약하여서 부당한 폭력에 짓밟힌다고 생각했다. 그가 남자답게, 수컷답게 살기 위해선 절대적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게 이때다.
폭력을 선망하며 자란 장정은 폭력으로 가정을 군림한다. 가정을 파탄내려는 아버지의 두 손을 자르고,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어머니를 폭력으로 붙잡으려 한다. 남자답지 못하고 약한 남동생과 자폐증을 앓고 있는 여동생은 보호 없이 살 수 없는 그저 유약한 존재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의 곁을 떠나간다. 가족을 보호하고자 행사한 폭력이 결국 그들을 파멸로 이끌고 만 것이다. 가부장적 질서를 내세운 저열한 폭력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간혹 일부 남성들은 자신이 약해졌다 느낄 때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잔혹한 짐승으로 변해간다. 작품은 이런 남성들의 잘못된 욕망과 행동이 얼마나 헛되고 위험한지를 꼬집어 말한다.
조광화 연출은 이번 작품을 '바보 같은 남자들의 반성문'이라고 했다. 조 연출은 이어 "이 시대에도 여전히 '가부장제'는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야기"라며 다시 작품을 올리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배우들은 몰입도 높은 연기력을 선보이며 연출의 의도를 살려낸다. 14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 배우 류승범은 그야말로 '장정'이다. 이글거리는 눈빛과 섬세한 감정표현은 관객을 압도한다. 배우 손병호와 황정민이 보여주는 아버지 '이씨'와 어머니 '박씨'는 우리네 부모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이 인상적이다. 극 중 많은 배우가 나오지만 누구 하나도 부족함이 없다. 그만큼 탄탄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일본식 다다미방을 배경으로 한 무대와 라이브로 연주되는 중저음의 베이스기타 선율은 관객들을 사로잡는 또 다른 매력이다. 작품은 오는 3월 26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서울 종로구 대학로 티오엠(TOM) 1관에서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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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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