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가 죽자 혼돈의 시대가 도래한다. 권좌를 노리는 이들은 저마다 적자임을 주장하며 서로에게 칼날을 겨눈다. 최후의 산자는 누구일까.
권력을 향한 야망과 탐욕을 그린 연극 '왕위 주장자들'(연출 김광보)이 무대 위에 올랐다. 국내에서 처음 공연되는 작품은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희곡 '왕위를 노리는 자들'이 원작이다.
13세기의 노르웨이가 시대배경이다. '호콘'은 선왕이 서거한 지 6년이 지나서야 왕위에 오른다. 그동안 선왕의 동생이자 호콘의 삼촌인 '스쿨레 백작'이 나라를 섭정해 왔기 때문이다. 호콘의 어머니인 여왕은 맨손으로 불에 달군 쇠를 만지는 의식으로 호콘이 선택받은 왕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호콘은 여전히 반쪽자리 왕에 불과하다. 6년간 왕국을 통치한 스쿨레 백작이 나라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작은 왕의 인장(印章)까지 손에 쥐고 호시탐탐 왕위를 노린다.
두 사람의 갈등은 '니콜라스 주교'가 나타나면서 심화한다. 니콜라스 주교는 호콘왕에게 백작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며 그를 잘 감시하라고 조언한다. 반면 백작에게는 호콘왕이 왕족의 혈통이 아닐 수 있다고 속삭인다. 호콘왕은 백작의 딸을 왕비로 맞아 화해하려 하지만 왕위에 대한 백작의 집착은 커져만 간다. 니콜라스 주교의 간교에 넘어간 두 사람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을 향해 내달린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왕좌를 둘러싼 권력 다툼은 역사극의 흔한 소재로 다뤄져 왔다. 그러나 150여 년 전에 쓰인 이 작품만큼 현시대를 관통하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극의 내용이 지금 우리 현실과 맞닿아 있다.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대권을 노리는 잠용들이 군웅할거하는 요즘, 등장인물들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폐부를 찌른다. 권력을 잡고자 하는 인간의 암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작품에서 '확신'과 '신념'은 왕권을 차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호콘왕은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신념에 따라 주저 없이 계획하고 행동한다. 반면 스쿨레 백작은 의심 속에 빠져 행동하지 못하고 파멸을 맞는다. 욕망에만 사로잡힌 그릇된 신념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니콜라스 주교는 성직자를 가장한 비열한 악의 축이다. 그는 권력에 기생하며 의심과 거짓으로 분열을 꾀하는 교활한 뱀과 같다. 그의 혀는 독을 품은 괴물과 같아서 스치는 자마다 성한 이가 없다. 놀랄 만치 현실적인 등장인물은 어지러운 현 시국을 곱씹게 한다.
김광보 연출은 "대선과 맞물려 의도적 선택이 아니냐고들 하는 데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면서도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우리 시대와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나 감탄했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스쿨레 백작 역을 맡은 배우 유성주와 니콜라스 주교 역의 유연수, 호콘왕 역의 김주헌 등의 연기는 관객을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을 발산한다. 시종일관 무대를 돌며 대사를 전하는 조연 배우들의 연기력은 극의 생동감을 더한다.
다만 장대한 원작을 압축하다 보니 갑작이 극의 장면이 전환되고 극적인 장면이 다소 미약하게 표현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2시간 동안 지루할 틈 없이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대권 주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연극이다.
극 중 스쿨레 백작은 말한다. "왕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적이라고 말하기는 쉽지요. 가장 위험한 적은 왕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지 말라고 왕에게 속삭이는 자입니다." 작품은 오는 23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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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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