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한 이발사 '모금산'(기주봉)은 돌연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 삶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순간, 무미건조했던 삶이 오히려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고, 찰리 채플린의 팔자걸음을 연습하기도 한다. 젊은 날의 꿈과 채플린을 좋아했던 아내, 그리고 홀로 남을 아들을 위한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얼마 후 금산은 연출 지망생인 아들 '스데반'(오정환)과 아들의 여자친구 '예원'(고원희)을 불러들인다. 아들 내외는 완성된 자작 시나리오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를 받아 들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다. 결국, 셋은 금산이 지정한 로케를 차례로 찾아다니는 로드 트립에 나선다. 말 많고 탈 많은 촬영이 마무리될 즈음, 크리스마스가 목전에 다가온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인디스토리 제공]
러닝타임 101분의 블랙코미디를 다섯 챕터로 나눈 구성이다. 그중 세 번째와 네 번째 챕터만 따로 떼서 본다면 자무쉬의 해방감 넘치는 로드무비 '천국보다 낯선'(1984)과 흡사한 구성이다. 거의 대사가 없는 소박한 드라마인데도, 감정이 물들듯 자연스럽게 고조된다.
자무쉬의 영향은 타이틀 영상부터 명확하다. 모금산이 이발소로 출근하는 모습을 절제된 롱테이크로 담아냈다. 별난 캐릭터가 별다른 설명 없이 등장하고, 뜬구름 없는 대사가 이어진다. 장황한 대사보다 미니멀한 영상으로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것도 자무쉬의 작품을 닮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인디스토리 제공]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1940)를 모던하게 패러디한 모습도 흥미롭다. 흑백 촬영된 서울의 랜드마크에 1930-40년대의 레트로한 정서가 담겨 묘한 운치를 자아낸다. 모금산과 채플린 모두 억압된 이발사를 연기했고, 경찰의 곤봉을 피하는 슬랩스틱 동작도 결이 같다. 금산이 자갈밭에서 강냉이를 뿌리고 폭탄 스위치를 누르는 장면에서 '위대한 독재자'의 타이틀 영상이 떠오른다.
영상과 촬영에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의외성'이 곳곳에 담겨 영화적인 재미를 더한다. 감각이 절제된 흑백영화인 만큼 음악의 역할이 막중하다. 임대형 감독이 시나리오를 집필한 때부터 블루스 삽입곡을 선곡해둔 이유다. 블루스 뮤지션 하헌진과 함께 무성영화를 꾸미듯 공들여 음악을 입혔다.
채플린은 무성영화 시대에 데뷔했지만, 유성영화의 시대가 온 뒤에도 음악과 동작의 싱크를 중요시했다. 유성 흑백영화인 위대한 독재자에서도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에 맞춰 과장되게 이발을 했다. 메크모에서도 이 테크닉이 부분적으로 재현되는 등, 닮은꼴을 찾아 대조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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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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