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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더스] 나의 주인(load)과 숙녀(lady)
작성일
  2023-07-23 23:43:03
조회수
  114

[마이더스]

나의 주인(load)과 숙녀(lady)

Loaf

유럽은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여타 대륙에 비해 문명의 발전이나 문화의 진보에 탁월한 호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많은 나라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살면서 각자의 문명과 문화를 여기저기 퍼 나르고 강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수많은 세월을 거쳐 오늘날까지 온 것이다. 이런 호조건이 과학에서 제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기에 유럽은 항상 세계사에서 중심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음식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다양하게 발전한 유럽의 음식문화와 식탁에서 나라를 막론하고 강자로 군림하는 두 주역이 있으니 빵과 고기다. 지구촌 음식의 세계적 통일성을 염두에 두고 생각의 추를 편향적으로 옮겨 봐도 이 형국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란 게 필자의 흔들림 없는 진단이자 예측이다. 그만큼 빵이 없는 유럽, 고기가 없는 유럽은 생각하기 어렵다.

유럽에서 가장 다양한 다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봐도 이런 생각은 옳다고 본다. 영국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런던에 거주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약 30만 명이다. 프랑스 인구를 감안하면 자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가 런던인 셈이다.

하긴 프랑스 사람들의 선조인 노르망디 대공이 도버해협을 건너 건설한 왕조가 섬나라 영국 아니던가. 이런 이유로 프랑스 사람들은 여전히 프랑스가 '영국의 큰 집'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서적으로는 런던에서 사는 프랑스 사람들이 남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봐도 될 듯하다.

그래서일까? 런던에는 프렌치 빵집이 많다. 프랑스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프랑스를 떠올릴 때 곧바로 생각나는, 즉 바게트 빵을 바구니에 담아가는 프랑스 사람들의 모습을 런던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필자가 경영하는 두 개의 레스토랑 가운데 하나는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 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진풍경이 벌어지는데, 프렌치 빵집 앞에서 길게 줄 서 있는 행렬이다.

빵을 굽는 주인은 파리에서 3대째 빵집을 하다가 아내와 함께 런던으로 건너왔다. 필자의 레스토랑과 불과 두 점포를 사이에 두고 있어 친한 이웃이 되었다. 인심이 좋아 빵을 공짜로 얻어먹을 때도 많다.

토요일 아침에 길게 줄 서 있는 풍경을 볼 때마다 '아 정말 프랑스 사람들은 빵을 사랑하는구나'란 생각을 깊이 하게 된다. 애들을 데리고 오는 사람, 부부가 나란히 오는 사람, 손자를 데리고 온 할아버지…. 강아지도 많이 오는데, 빵집에 들어간 주인을 쳐다보는 강아지들의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다. 긴 바케트 빵을 들고 가는 주말의 이 풍경을 보는 것 또한 내게는 즐거운 런던의 일상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여자는 듬성듬성 보이고 대부분이 남자다. 빵을 굽는 제빵사도, 줄 서서 빵을 사가는 사람도 남자가 많다. 레이디(Lady; 숙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재미있는 빵의 역사가 필자의 머릿속을 확 휘젓고 들어왔다.

오늘날 숙녀의 영어식 표현인 레이디는 원래 밀가루로 곱게 반죽한 빵을 빚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였다. 오늘날처럼 발달한 빵공장이나 제빵소가 없던 시절, 곡물가루로 빵을 만들어내는 일은 가정에서 음식을 담당하는 숙녀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덩어리가 아주 큰 빵(loaf)이었다. 지금이야 먹기 좋고 예쁘게 잘라 팔고, 모양도 다양하지만 그 시절의 빵은 볼품없고 크고 투박했다. 이것을 칼로 썰어 놓은 작은 빵이 요즘 흔히 말하는 빵(bread)이다.

그러니 우리가 빵이라고 부르는 loaf와 bread는 모두 의태어에서 출발했다고 봐야 한다. 아직도 유럽 사람들은 큰 빵 덩어리인 loaf를 좋아한다. 그래서 각 가정에는 loaf를 먹기 좋게 자르는 칼이 있다.

빵을 먹는 사람들에게 밀을 생산하는 땅은 중요하다. 한국인에게 쌀과 채소를 생산하는 논이나 밭이 중요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빵을 만드는 레이디보다 중요하고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은 밀을 산출하는 땅 주인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로드(load; 주인)다. 다시 말하면 load는 loaf의 주인이다. lady가 행위에서 나온 단어라면 loaf는 권위에서 나온 단어라고 보면 된다.

영어권 영화에서 왕과 귀족이 아랫사람과 대화할 때 많이 듣는 호칭이 '저의 주인'(my load)이다. 오늘날 집주인, 건물주, 땅 주인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 'landlord'는 결국 빵 때문에 생겨났다. 또 연인들이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면서 멋지고 낭만적인 단어로 'oh my lady' 'my beloved lady'란 표현을 쓰는데, 이 또한 빵과 관련이 깊다.

단어의 뿌리를 찾다 보면 음식과 연관된 사실을 품고 있을 때가 많아 참 재미있다. 다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해보면 landlord보다는 lady가 더 좋은 듯하다.

정갑식 음식문화 칼럼니스트

정갑식 음식문화 칼럼니스트

ㅡ[연합뉴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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